본문바로가기


본문 영역

홈 육상단뉴스 > 해외육상뉴스

해외육상뉴스 - 해외 육상관련 주요 언론기사를 전해 드립니다.

불까, 제3의 바람

게시일 : 2005-11-30 | 조회수 : 3,572

케냐,이디오피아에 이어 우간다가 장거리 육상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 선수인 보니파스 키프롭선수에 관한 일본 육상잡지의 기사입니다.
-----------------------------------------------------------------------

보니파스 키프롭(우간다)
=======================

2006년4월1~2일에 개최되는 세계크로스컨트리 후쿠오카대회까지 이제 반 년 남았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대회로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것인가? 세계대회의 금메달 후보를 소개하는 연재로 이번 달부터 세계크로스컨트리의 주목선수에게 다가가 보자.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보다도 우승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세계크로스컨트리선수권대회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된다. 내년 4월에 후쿠오카에서 제34회 대회가 펼쳐진다. 올림픽,세계선수권에는 3명(와이드카드를 포함한 4명)으로 제한되어 있는 한 나라의 대표선수의 수가 6명으로 많기 때문에 보다 많은 강호가 레이스에 참가한다. 세계크로스컨트리대회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보다 우승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다.

세계크로스컨트리대회의 전신은 1903년에 4개국으로 시작된 국제크로스컨트리선수권이다. 처음에는 "국제"라고 하는 이름뿐인 대회였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참가국도 늘어나, 슈퍼스타를 많이 배출했다. 잭 볼딘(주,1), 알렌 미문, 캐스튼 로란츠 등 트랙과 마라톤에서 널리 알려진 선수가 4번, 이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73년에는 국제육상경기연맹 주최 대회가 되어, 세계크로스컨트리선수권이라고 명칭을 바꾸고, 명실공히 세계선수권이 되었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전반에는 캐로스 로프쉬(주 2), 존 트래쉬 등 개최국에서 영웅이 탄생하였지만, 80년대 후반부터는 아프리카의 시대로 접어든다. 케냐의 존 구기(注 3)와 폴 터갓이 5회, 개인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지금은 케네니사 베켈레(에티오피아)의 시대이다. 2002년부터 4년 연속해서 롱과 쇼트의 양 종목을 제패하고 있는 베켈레는 사상 최강의 크로스컨트리 런너의 명성을 갖고 있다. 내년 봄, 후쿠오카에서 5연패에 도전하는 그를 위협하는 선수가 있을까?

장거리 왕국의 케냐,에티오피아는 많은 선수를 배출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다른 동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도 젊고 재능이 있는 선수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우간다의 보니파스 키프롭도 그런 선수 중 한 사람이다.

케냐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우간다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는 1972년 뮌헨올림픽 남자400m 허들에서 우승한 존 아키브아이다. 올림픽에서 유일한 우간다인 금메달리스트이지만, 그로부터 24년 후인 애틀란타올림픽 남자400m에서는 데이비스 카모가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우간다는 이웃국가인 케냐와 에티오피아와는 달리, 장거리왕국으로서 명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계크로스컨트리 주니어부에서 상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우간다와 케냐와의 국경은 옛날 대영제국이 마음대로 정한 것이다. 국경이 부족 주거구를 분단하고 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 아니다. 키프롭은 케냐 국내에서도 많은 슈퍼 런너를 배출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카렌진족에 속한다.

주 1)
잭 볼딘(영국) : 1950년 유럽선수권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국제크로스컨트리 33~35, 39년 우승
알렌 미문(프랑스) : 56년 올림픽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국제크로스컨트리 49,52,54,56년 우승
캐스튼 로란츠(벨기에) : 64년 올림픽 3000m장애물 금메달리스트
국제크로스컨트리 62,67,69,72년 우승

주 2)
캐로스 로프쉬(포르투칼) : 84년 올림픽마라톤 금메달리스트,
76년 올림픽 10000m 은메달,
세계크로스컨트리 76년,86년,84년 그리고 85년 자국의
리스본대회에서 우승
존 트래쉬(아일랜드) : 1984년 올림픽마라톤 은메달리스트, 세계크로스컨트리
78년,79년 리마릭대회에서 우승
주 3)
존 구기(케냐) : 5000m 금메달리스트, 세계크로스컨트리 86~89,92년 우승.
폴 터갓(케냐) : 마라톤 세계최고기록 보유자, 세계크로스컨트리 95~99년 우승.


아버지도 형도 육상선수
----------------------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 남자10,000m에서 게브라셀라시에(에티오피아)와 터갓(케냐)의 레이스를 라디오에서 들었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경기는 1985년 케냐 국경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5km 떨어진 동네에서 태어난 우간다의 보니파스 키프롭 소년에게 충격을 주었다. 모스크바올림픽 남자10,000m를 라디오에서 들었던 게브라셀라시에의 어린 시절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자 뿐일 것인가?

1996년은 케냐의 코치로 유명한 마이크 코스게이가 하일레 게브라셀라시에의 명성 높은 마지막 스퍼트를 봉쇄할 만한 교묘한 작전을 둘러싼 역사에 남는 명승부였다.
마츄카, 코에치가 레이스를 이끌고 마지막에는 터갓에게 롱 스퍼트를 시키는 작전을 코스게이는 세우고 있었다. 처음에 레이스를 끌 예정이었던 마츄카는 도움이 되질 못했지만, 코에치는 5000m부터 하이 페이스로 페이스를 끌어, 그 후에는 터갓이 나머지 2,000m에서 맹렬한 기세로 스퍼트하여 게브라셀라시에를 뿌리쳤다. 금메달에 대한 2명의 집념이 관객까지 전해지는 레이스였다.

"어렸을 때, 일류선수의 생활은 어떤 것일까를 많이 생각했었다. 그들같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의 레이스에 참가하는 것이 그 때부터의 꿈이었다"
키프롭의 꿈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2000년의 일이었다. 포르투갈에서 펼쳐진 세계크로스컨트리에 우간다 대표의 주니어 선수로서 참가했던 것이다. 형인 마틴 트로이티치가 11위였던 그 레이스에서 키프롭은 27위였다. 사실 키프롭은 육상일가의 출신이다.

"국제적인 선수는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젊었을 때 10,000m 선수였으며, 누나도 우간다 국내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알고 있다시피 2살 위의 마틴은 저와 같은 국제적인 런너입니다" 많은 동아프리카의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보니파스도 어렸을 때부터 학교까지 매일 달려서 통학을 했다. 그러나 그의 경우에 학교까지의 왕복은 많은 트레이닝이 되질 않았다. "집에서부터 학교까지의 거리가 약 2km 정도였다. 6학년 때부터 경기에 나갔지만, 학교까지의 왕복은 연습의 일환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학교까지 달려서 통학했던 것은 당시에는 도보가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달리는 것이 제일 빨랐으니까..."

그런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 고푸리 누와가바 선생님이었다. 그는 키프롭에게 경기에 집중하며 연습하면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지금까지도 조언을 해 주신다" 2000년 세계크로스컨트리대회에서 처음으로 해외원정을 경험했던 키프롭은 2001년에는 아프리카주니어선수권에서 5,000m와 10,000m에 출전했다. "5,000m에서는 우승, 10,000m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다음 해에는 더블린에서 개최되었던 세계크로스컨트리대회의 주니어부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이때 더블린에서 중요한 만남이 있었다. 현재 그의 에이전트 겸 코치를 하고 있는 스코틀랜드인 리키 시므즈와의 만남이 있었다.

급성장의 이유는?
------------------

2002년에 13분55초05였던 5,000m의 본인기록을 다음 해에는 13분16초21로 단축했다.
2001년에 기록했던 10,000m 본인기록 28분45초76도 마찬가지로 2003년에는 27분15초88까지 단축했다. 2003년에는 약진의 해였다. 키프롭은 약진의 이유를 설명한다. "시즌 전에 우간다에서 펼쳐진 연습 프로그램을 리키가 짜 주었다. 그 전까지 자기 스타일로 해 왔던 연습보다도 훨씬 체계적으로 되어진 것이다.

그 후, 여름 시즌이 시작되면서 런던 교외의 테딩턴에 살면서 케냐선수들과 함께 연습을 했다" 키프롭은 시므즈가 에이전트를 하고 있는 선수들, 스티븐 체로노(샤힌), 알베르트 쳅크루이(핫산), 존 키보웬, 알베르트 체비히 등 케냐 및 케냐 출신의 초일류 선수들과 함께 연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키프롭은 2003년 세계크로스컨트리대회 주니어부의 우승후보였다. 레이스는 엘리우드 킵초게(케냐)가 선두에 서서, 나머지 1바퀴를 남기고 선두그룹은 7명. 케냐 3명, 에티오피아 3명에 포함되어 키프롭은 시종 2위로 달렸다. 마지막 1바퀴를 킵초게는 더욱 페이스를 높였다. 그 페이스에 붙지 못하는 선수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마지막 200m에서 키프롭은 선두로 나섰다. 그러나, 수개월 뒤에 세계육상선수권 5,000m에서 우승한 킵초게는 키프롭에 바짝 붙어서 나머지 100m를 남기고 반대로 스퍼트했다. 키프롭은 2위로 밀려났다.

2003년 파리세계선수권대회에서 키프롭은 5,000m를 달렸다. "파리에서는 10,000m보다 5,000m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큰 자신감을 가지고 예선 레이스에 임해, 레이스 중에도 몸이 가볍고 컨디션이 좋았지만, 다른 선수들의 마지막 스퍼트를 과소 평가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예선 1조에서 달렸던 키프롭은 마지막 스프린트에서 패하여 7위에 머물렀다. 결승에도 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큰 교훈이 되었다. 결승에 진출하지 못하면 메달도 딸 수가 없으니까..." 과거 2년 세계크로스컨트리 주니어부에서 3위,2위로 약진해 왔던 키프롭은 2004년 주니어의 마지막 해를 맞이했다. 전년도에 우승했던 킵초게는 20살이 되었기 때문에 키프롭의 라이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강적이 나타났다. 2바퀴를 남기고 선두그룹에는 이디오피아 2명과 케냐 2명에 키프롭이 포함된 5명 뿐이었다. 우승후보였던 키프롭은 우연히 레이스를 끌었던 메바 타데쎄(에티오피아) 이외의 선수를 따돌렸다. 마지막에는 타데쎄와 일대일 승부가 됐지만 키프롭은 2년 연속해서 라스트 스퍼트에서 지고 말았다. "04년 세계크로스컨트리 주니어부에서는 우승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02년,03년에 획득했던 동,은메달에 금메달을 더하고 싶었지만, 이긴 선수에게 굉장히 놀랬다. 하지만, 그 날 이후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호적이라는 제도가 일본과 유럽과는 전혀 다른 아프리카 선수들의 나이에는 의문이 생긴다. 대회 장소에서 이겼던 타데쎄(03년에 주니어 숏 코스에서 7위)는 아무리 봐도 주니어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 들렸다.

주니어 기록을 경신
-------------------

"04년 세계주니어에서의 목표는 10,000m 우승이었다. 최대의 라이벌은 PACE스포츠 매니지먼트의 팀 동료이며, 테딩턴에서 함께 연습하고 있는 파비앙 조셉(탄자니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03년 세계하프마라톤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강호이며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두 그룹의 키프롭과 조셉은 다른 선수들을 많이 따돌리며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겼다. 레이스는 마지막 직선에서의 싸움이 되어, 결국에는 키프롭이 조셉을 따돌리며 28분03초77로 우승, 92년에 게브라셀라시에가 수립했던 대회 기록을 약간이지만 경신했다.

"내가 대회기록으로 우승하고, 파비앙이 은메달을 획득한 것은 기뻤습니다"라고 키프롭은 생각했다. "10,000m의 피곤함이 남아 있었지만, 5,000m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마지막 스퍼트를 막기 위해 레이스를 끌었습니다." 그 5,0000m에서는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겼을 때, 선두그룹에는 7명이나 선수들이 남아있었다. 백스트레이트(120m지점)에서 케냐의 오거스틴 쵸게가 스퍼트 해 우승, 키프롭은 5위에 머물고 아테네올림픽을 맞이했다. "올림픽 전의 연습에서 자신은 긴 거리에 맞는다고 생각하여 10,000m를 달렸다. 좋은 레이스를 하는 것을 목표로 아테네에 들어갔지만, 메달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이스 중에 몸이 가벼워 중반에 게브라셀라씨에 가 뒤쳐졌을 때는 메달의 가능성이 커졌다고 기뻐했다" 아테네올림픽 10,000m 경기의 7,100m 지점에서의 선두그룹은 키프롭을 포함한 3명이었다. "하지만 선두인 이디오피아 선수들(베켈레,시히네)이 페이스를 떨어뜨려 게브라셀라씨에가 따라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도 선두그룹에 붙고 말았다. 그대로 빠른 페이스로 레이스가 전개되었다면 메달을 딸 수 있었다" 키프롭은 아테네에서 4위에 머물렀다.

올림픽 후에는 브뤼셀의 반담대회(골든 리그의 1차 대회)에서 10,000m를 달려, 5위였지만 27분04초00의 주니어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1월의 크로스컨트리대회에서 호기록을 세웠을 때부터 올 시즌 10,000m의 주니어세계기록을 경신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올해 헬싱키세계육상선수권은 "반드시 메달을 따고싶다"라고 임했지만, 마지막에 또 메달리스트들의 마지막 스퍼트에서 따라가지 못했다."페이스가 너무 느렸다. 조금 더 빨랐다면 메달을 딸 수 있었는데..." 키프롭은 올림픽에 이어서 4위에 머물고 말았다.

앞으로의 과제는 얼마나 다른 선수들을 빠른 페이스로 끌어 들이느냐에 있다.세계선수권 후 키프롭은 10,000m에서 27분 이내를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전년도 세계주니어기록을 수립한 반담대회에 참가했다. 5,000m를 13분11초로 통과하면서 8,000m에서 2위로 올라서며 26분39초77의 우간다 기록을 세우며 골인했다. "정말로 기쁩니다. 케네니사, (이번 레이스에서 26분17초53)의 세계신기록에 대해서는 "축하한다"라고 하고 싶다. 코치에게 들은 대로 중반에 조금 참으면서 마지막에 강력한 골인이 가능했다. 마지막 한 바퀴는 58초였다" 이 레이스에서 케네니사 베켈레의 도전자로서 키프롭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05년 세계크로스컨트리에서 메달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베켈레는 약혼자의 사망이 있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베켈레,샤힌,킵초게,쳅클루이 등 강호가 많았기 때문에 힘든 레이스가 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결국 키프롭은 첫 시니어 크로스컨트리에서 7위에 머물렀다. 키프롭은 트랙,크로스컨트리 둘 다 좋아한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라도 좋은 성적을 남기고 있어서 앞으로도 두 종목에서 달리고 싶다. 겨울에는 크로스컨트리로 여름의 트랙을 위해 지구력을 키우고, 여름에는 트랙으로 겨울의 크로스컨트리를 위해 스피드를 기른다. 내년의 세계크로스컨트리는 반드시 나가고 싶다. 그리고 메달을 따고 싶다" 아직 20살의 키프롭은 무궁 무진한 가능성이 있다. "나는 아직 젊다.매년 확실히 조금씩 빨라지고 싶다"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마무리했다.

공식 후원사

official partner

  • 삼성전자

official suppler

  • 아식스
  • 포카리스웨트
  • phiten